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주소: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건봉사.
전화번호: 336828100.

전문 분야: 불교사찰, 관광 명소.
기타 관심사항: 휠체어 이용 가능 출입구, 휠체어 이용가능 주차장.
리뷰: 이 회사는 Google My Business에서 576개의 리뷰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균 의견: 4.5/5.

📌 의 위치 건봉사

소개: 건봉사

건봉사는 한국 불교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위치는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에 해당합니다. 연락처는 전화번호: 336828100로, 웹사이트는 현재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찰은 불교사찰과 관광명소로 분류되며, 특히 그 역사와 아름다움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특징 및 정보

  • 역사적 중요성: 과거에는 백담사, 신흥사, 낙산사를 말사로 관리하던 유서깊은 절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불상이 불타지 않고 남아있어 보존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 접근성: 군사 시설이 주변에 있어 긴장감을 느낄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출입구와 주차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습니다.
  • 관광 가치: 적멸보궁에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며, 아치형 다리와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있어 관광 가치가 높습니다.
  • 복원 과정: 1950년 6.25 전쟁 당시 전소된 이후, 1994년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복원 과정에서도 원래의 자연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

위치: 금강산자락의 시작, 민통선 안쪽 설립: 신라 시대 520년 (전설적인 창건 시기) 중요 유물: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개방 시간: 자세한 정보는 방문 전 확인 필요

특별한 체험

건봉사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템플스테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주말 나들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자연 속에서 평화와 명상을 경험하며 부처님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여러분의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입니다.

방문자를 위한 조언

  • 방문 전 웹사이트를 확인하여 운영 시간과 특별 행사 등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지만, 특히 가을은 단풍과 함께 더욱 빼어납니다.
  •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편리하게 방문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리뷰

건봉사는 Google My Business에서 576건의 리뷰를 받고 있으며, 평균 의견은 4.5/5로 매우 긍정적입니다. 이는 사찰의 역사적 가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특별한 체험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도 긍정적인 경험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의 리뷰 건봉사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Daniel H.
4/5

한때 백담사, 신흥사,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유서깊은 고찰입니다.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 중 하나로 불이문, 능파교와 한국전쟁의 전란속에도 불 타지 않고 설아남은 백년송이 볼 만합니다.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tram L.
4/5

민통선부근이라 군부대가 많아서 조금 긴장했지만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계곡과 풍광이 잘 어우러진 자연미 불탄후 재건한 아치형다리
작지만 부처님기운이 가득한 대웅전등
볼거리가 많은 건봉사
기회가 된다면 템플스테이도 경험해보고 싶었던
주말 나들이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리인70
4/5

25.03.02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
부처님 진신치아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
금강산자락의 시작에 위치
민통선 안쪽에 위치
1950년 6.25때 전소
1994년부터 복원
지금도 곳곳에 절터가 남아있음
눈내리는 건봉사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SungKun L.
5/5

전국 4대 사찰이었던 금강산 건봉사.
신라시대 520년에 창건되었다고 함.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를 거느렸다.
한때 3,183칸의 대가람이었으나,
화재와 625 전란으로 폐허가 됨.

1989년 민통선 해제로 민간인이
자유롭게 방문하며, 재건하고 있다.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하며,
사계절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최석정
4/5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사찰.
규모가 좀 큰 사찰이다.
일년내내 관광객과 신도들이 끊이지 않고 찾는 것 같다.
근처 여행중이라면 한번쯤 방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jake K.
5/5

고성 왔다가 들려본
건봉사

대한민국 최북단 사찰
6.25 전쟁으로 불이문 현판만
남고 소실된 사찰인데 재건함

너무 고즈넉하고 산에 둘러 쌓여 있어서
그런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의 사찰

석가모니의 진신 치아 사리를
모셔둔 적멸보궁
치아 사리를 친견할수 있어서 너무 좋았음.

불이문 입구의 500년된 팽나무와
사찰 뒤쪽 왕소나무가 정말 멋있었음

휴가때 진부령으로 넘어 가신다면
한번 들려보시길 추천!!!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Chef O. T.
5/5

고성에서 가볼만한 곳 첫번째로 꼽는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25전쟁 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533년(법흥왕 20) 부속암자인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庵)을 창건하였다. 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정신(貞信) · 양순(良順) 등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만일회의 효시이다.

여기에 신도 1,820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중 120명은 의복을, 1,700명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다. 782년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하였고,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했다고 한다.

810년(헌덕왕 2) 승전(勝詮)이 당나라 현수(賢首)에게서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하여 『화엄경』을 강설하였고, 845년(문성왕 7) 백화암(白華庵)을 창건하였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건하고 건봉사라 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願堂:소원을 빌기 위한 지정 사찰)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다.

이 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는데, 성종은 효령대군(孝寧大君) · 신숙주(申叔舟) · 한명회(韓明澮) · 조흥수(趙興洙) 등을 파견하여 노비와 소금을 하사하고 사방 10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1523년(중종 18) 보림(普琳)이 이 절과 보림암을 중수하였고, 1605년(선조 38) 유정(惟政)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오면서 불사리와 부처님 치아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하였으며, 혜능은 안양암(安養庵)과 적명암(寂明庵)을 중건하였다.

1673년(현종 14) 수흡(修洽)과 도율(道律)이 1,200근의 범종을 주조하여 봉안했고, 1683년(숙종 9) 명성왕후(明聖王后)가 시주한 1,000금으로 불상을 개금(改金)하였다. 이 때 명성왕후는 불장(佛帳)과 탁의(卓衣)도 시주하였다.

1708년 능파교(凌波橋)의 비(碑)를 세우고 동대암(東大庵)을 창건하였으며, 1724년(경종 4) 주지 채보(彩寶)가 구층탑을 건립하고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하자 명성왕후가 천금을 내렸다.

1726년(영조 2) 석가치상탑비(釋迦齒相塔碑)를 세웠으며, 육송정 홍교(六松亭 虹橋)를 중건하고 비를 세웠다. 1754년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상궁 이씨와 안씨를 보내어 석가상을 만들게 하고 팔상전을 세워 원당으로 정하였으며, 8월에는 영조가 숙종의 어제절함도(御製折檻圖)와 어필서(御筆書)를 내려 어실각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1799년 강원도 순찰사 남공철(南公轍)이 유정의 기적비(紀績碑)를 세웠고, 1802년(순조 2) 용허(聳虛)가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며, 1804년 왕비 김씨가 금 1,000금과 오동향로 · 오동화준(梧桐花樽) · 양산 등을 내려 순조의 성수를 축하했다. 1805년 왕비 김씨는 나라를 위한 재(齋)를 올리고 병풍과 『화엄경』 1부를 하사하였으며, 1828년 유정의 영각(影閣)을 지었다.

1851년 유총(侑聰)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65년(고종 2) 화은(華隱)을 청하여 강원(講院)을 개설하였는데, 이 때부터 대표적인 강원의 하나로서 많은 강사들을 배출하였다.

1878년 4월 3일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는데, 이 때 학림(鶴林)이 불 속에 뛰어들어 팔상전의 삼존불상과 오동향로 · 절감도 등을 꺼내었다. 1879년 개운사 · 중흥사(重興寺) · 봉은사 · 봉선사(奉先寺) · 용주사 등의 도움을 얻어 대웅전 · 어실각 · 사성전 · 명부전 · 범종각 · 향로전 · 보안원 · 낙서암 · 백화암 · 청련암을 중건하였다.

1881년 관준(寬俊)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설하였고, 1885년 운파(雲坡)가 모연금으로 대웅전 · 관음전 · 명부전 · 사성전의 문을 개조하고 대웅전 후면을 돌로 쌓았으며, 1886년 명례궁(明禮宮)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1888년 청련암과 대원암이 불탔으며, 1889년 인파(仁坡) · 관준 등이 팔상전 · 진영각 · 노전 ·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91년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소상재를 올렸고, 범운(梵雲)이 부처님 치아를 천안 광덕사에서 받아 와 팔상전에 봉안하였으며, 1894년 관준이 선원(禪院)을 만들었다. 1906년 사적비를 세웠고, 어산청범음계(魚山廳梵音契)에서 석가영아탑봉안비(釋迦靈牙塔奉安碑)를 세웠으며, 봉명학교(鳳鳴學校)도 설립하였다. 1908년 제4회 만일염불회를 회향한 뒤 의중(宜重)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열었다.

1911년 조선사찰령에 따라 30본산의 하나가 되었으며, 9개 말사를 관장하게 되었다. 또한 상해에서 신간 대장경 일부를 구입하여 봉안했으며, 1914년 소신대(燒身臺)에 31명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간성군에 포교소를 세웠다.

1917년 팔상전과 낙서암을 중수하였고, 1918년능허(凌虛)와 경해(景海)가 극락전을 중수하였으며, 운파는 중종(中鐘) 5좌(坐)와 불기(佛器) 30좌를 비치하였다.

1919년 능허가 1,000원을 시주하여 불이문(不二門)과 영빈관 · 별실 · 문수교를 새로 세우고 산영교(山映橋)를 고쳤다. 1920년 인천 포교당과 봉림학교(鳳林學校)를 세웠으며, 한암(漢巖)을 청하여 무차선회(無遮禪會)를 베풀었다.

1924년 사무소를 중수하고 극락전과 만일회의 부속건물 등을 중건하였으며, 1926년 불교전문강원을 설치하고 공비생(公費生) 30명을 양성하였으며, 불상 7위(位)를 개금하고 장구사(葬具舍)를 세웠으며, 덕성(德性)의 주재로 제5회 만일염불회를 계승하였다.

6·25전쟁 때 이 절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 당시까지 현존하였던 당우로는 대웅전 · 관음전 · 사성전 · 명부전 · 독성각 · 산신각 · 단하각 · 진영각 · 범종각 · 봉청루 · 보제루 · 대지전 · 동지전 · 서지전 · 어실각 · 어향각 · 동고 · 낙서암 · 극락전 · 만일원 · 보안원 · 선원 · 원적암 · 사무소 · 불이문 · 여관 · 장의고 · 성황당 · 수침실(水砧室) 등 총 642칸에 이르렀다.

국가유산으로는 도금원불(鍍金願佛) · 오동향로 · 철장(鐵杖) · 대종 · 절감도 · 차거다반(硨磲茶盤) 등과 불사리탑 등 탑 8기, 부도 48기, 비 31기, 고승 영정 44점 등이 있었다.

또 부속 암자로는 보림암 · 백화암 · 봉암암 · 극락암 · 백련암 · 반야암 · 청련암 · 대성암 · 적명암 · 보리암 · 보문암 · 대원암 · 일출암 · 안양암 · 동대암 · 망해암 등이 있었다.

현재 고성 건봉사지는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6·25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도 능파교와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두 개의 돌기둥,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새겨진 돌기둥 등이 있다.

건봉사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rrroy
5/5

고성에 위치한 건봉사는 부처님의 치아 진신사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임진왜란때 승려들이 승병을 일으킨 곳이자 일제 강점기 때 항일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사찰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한국 전쟁당시 고성을 중심으로 벌어진 치열한 남북 공방전으로 1920년대 세워진 불이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절의 규모가 매우 커서 템플스테이를 한다면 정말 절 다움 곳에서의 체험이 될것 같습니다. 만일 동안 기도를 올리는 만불사찰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극락전 왼쪽 위쪽의 소나무가 특히 영험한대 그 어떤 화마도 잘 이겨낸 소나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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